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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티즘(Chuntism) : 천태사상의 원류를 대중이 깨닫고, 이행하는 흐름입니다. 천티즘은 대중이 주체이며, 실생활 속 천태사상의 의미를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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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6
2014
용암스님 법화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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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암 스님 법화경 특설 법문 – 방품편 – 6.먼저 수행하고, 그 다음에 남을 구제하라

그래서, 아함경에서 열반을 설했던 것을 거두고, 열반을 버리고 다시 중생계로 되돌아 오도록 권하는 것이 방등부 경전의 핵심이다.

“열반을 이룬 사람은 열반이 머물지 말고, 중생계로 되돌아 오라.”

그래서, 우리가 사승을 설할 때, 성문, 연각, 보살, 불 을 말한다.

이제, 여러분들이 사승을 알아야 여러분들이 보살길을 걸을 것인지, 소승과 같이 뱍지불에 머물를 것인지가 결정이 됩니다.

왜냐?

 

부처님의 가르침의 출발은

남을 구제하는 것을 먼저 가르치지 않는다.
먼저 자신부터 구제하라!

“자기도 구제하지 못한 자가, 남 구제하겠다고 까불고 돌아다니면 안된다^^”

 

자기 자신을 먼저 구제하는 것이 아함의 법문이다.

아함의 법문에서 생사가 만들어지는 근본을 찾으면, 생사를 벗어나는 근본도 찾게 된다.

생사를 벗어난 자리를 우리는 “해탈/열반이다” 한다.

 

해탈/열반은 소위, “무고한 운지”다.

고통이 없는 아주 편안한 자리다.
걱정이 하나도 없다.
세월을 탓할 것고 없고,
사랑과 미움에 놀아날 것도 없고,

네 것도, 내 것도,

나눌 것이 없이

모든 것이 아주 심심한 자리다.

겨우 생사를 벗어나 깨끗한 열반지에 들어 갔는데, 부처님은 그것을 버리라 한다.

 

깨끗한 열반의 옷을 벗고 생사의 누더기 옷을 다시 입어라 한다.

 

이렇게 권한다.

 

다시 누더기 옷을 입으라 한다. 왜?

생사를 벗어나지 않은 중생계에 들어와서 그들을 이끌어 생사를 벗어나게 가르칠 수 있다.

 

그 행이 보살행이다.

 

아라한과를 이룬 가운데 방등부를 듣고, 내가 나를 구제했으면 이제 남을 구제하고 가야겠다고 마음을 낸 사람이 있고, 어떻게 나를 구제해서 편안한 자리에 왔는데, 또 고생하는 곳으로 가라하느냐, 난 절대 못간다 하는 부류가 있다.

 

 

삼승이란?

나를 구제했으면 이제 남을 구제해야겠다는 부류가 보살이다.
난 절대 못간다 하는 부류는 연각, 벽지불이라 한다.
정리하면,

삼승을 설할 때,

  • 아라한과 : 생사를 벗어난 자리
  • 연각, 벽지불 : 아라한과에 머무는 자리
  • 보살 : 중생계로 돌아가 중생을 제도하는 자리

 

부처님은 일불승으로 들어가는 화엄을 설하려다 듣는자, 아는자가 없으니,
초입부터 다시 가르친 것이다.
초등, 중등, 고등과정을 거쳐 대학교육하는 것과 같이

  1. 화엄은 성인의 세계라면,
  2. 아함은 초등의 세계다.
  3. 방등은 중등교육이다.
  4. 반야는 고등교육이다.
  5. 법화는 대학의 전문교육이다.

 

대학교육을 통해 초.중.고 를 다 수용하는 자리다.

 

방등은 열반을 버리는 교육

반야는 중생계로 돌아온 보살이 사는 법 교육

 

반야의 금강경은?

그래서

 

금강경의 핵심은 “공(空)”이다.

 

제법이 공하니, 공한 것에 집착하지 말고 마음내라.

제법의 핵심에는 나라는 육신과 육신에 집착하는 마음이 있다.

금강경은 시작도, 중간도, 끝도 집착하지 말라.

 

중생이 집착하는 4가지 – 4상(相)

  1. 아상 : 남과 비교해서 내가 제일이다 라는 마음
  2. 인상 : 만물의 영장, 사람이다 라는 마음, 사람이하는 중심에 자신이 있다.
  3. 중생상 : 혼자는 미약하니, 다수의 공동체에 의지하는 마음, 혈연, 지연, 학연 등. 중생상의 은신처다.
  4. 수자상 : 죽은자와 산자의 대립관계, 내가 살아 있다는데 의존하고 집착하는 마음

 

혈연의 사례를 들자면,
혼자서 하면 되는데, 꼭 핏줄 끌어다가 우호세력을 만든다.

 

이 모두에는 나의 육체가 있고, 육체라는 나와, 우리라는 것, 살았다는 것.
이런 것이 중생이 의존하는 4가지 상의 기준이다.

 

 

중생과 보살의 구분

 

여기(집착)에 의존하면 중생이요,

여기(집착)에 의존하는 마음을 버리고, 마음 낼 줄 아는 것을 보살이 내는 마음이다.

 

 

중생의 4가지 상에 집착하지 않고, 거기에 의존하지 않고, 마음을 내면, 너와 나는 나눠지지 않는다.

평등한 마음이다.

그렇게 마음을 내면, 남을 나처럼 존중하게 되고, 나처럼 이해하게 되고, 나처럼 배려하게 되고, 나처럼 사람하게 된다.

이것이 보살이 사는 법이다.

 

 

 

[참고자료: 위키백과]

방등부(方等部)는 유마경, 승만경 등

 

유마경

  • 재가거사인 유마힐을 주인공으로 한 경전
  • 유마거사 이야기

 

유마경 관련 이야기 자료

출가 중심의 왜곡된 불교를 철저하게 비판하여 대승불교의 진의를 밝히고 있다.
유마거사가 살고 있는 바이살리는 중인도 갠지스강 지류인 간다아크강의 연안에 발전된 상업도시로 화폐경제가 발달되었고, 진취적이고 자유로운 정신이 넘쳤던 곳이었다. 유마거사는 이 시대의 자유롭고 진취적이며 비판적인 정신을 대표하고 있다.
유마힐은 Vimalakīrti의 음역으로 “깨끗한 이름(淨名)” 또는 “때 묻지 않는 이름(無垢稱)”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 경의 또 다른 이름인 『불가사의해탈경(不可思議解脫經)』
부처님이 아난에게 “이 경을 불가사의 해탈문이라고 이름한다.”라고 한 것에 근거
이 경의 내용이 상식이나 이론적인 입장을 초월한 불가사의한 종교적 체험의 경지를 서술하고 있다.
출가중심주의의 형식적인 부파불교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대승불교의 진의를 드러내고 있다.
유마거사는 세속에 있으면서도 대승의 보살도를 성취하여 출가자와 동일한 종교 이상을 실현하며 살고 있었다.
유마거사는 방편으로 병이 들었는데, 문병 오는 사람에게 설법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이러한 사정을 알고 제자들에게 유마거사의 병문안을 갈 것을 명하였지만, 일찍이 유마거사로부터 힐난을 들은 적이 있는 제자들은 병문안 가는 것을 극구 사양한다. 유마거사는 비록 세속에 있지만, 대승의 가르침을 자각하였기에 10대 제자들과 보살들이 그를 상대할 수 없었던 것이다.
마침내 문수보살이 부처님의 명을 받아 유마거사의 병문안을 가게 된다. 두 사람은 유형적 상대적인 것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자재하게 대화한다. 유마거사는 기존의 출가중심의 불교에 대한 비판을 통해 당시 불교의 문제점을 비판 지적하고 있다.

 

  • 첫째, 현실의 국토가 불국토이다. 불국토라는 것이 이상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들이 현재 살고 있는 이곳이다. 「불국품」에서 “직심(直心), 심심(深心), 보리심(菩提心)이 보살의 정토이다.” “이 마음이 청정하면 불국토도 청정하다.”라고 하여 정토라는 것은 그것을 실현하고자 하는 보살의 실천정신 가운데 이미 표현되어 있으므로 현실국토가 바로 정토라고 하였다.
  • 둘째, 자비정신의 실천이다. 「문질품」에서 “어리석음과 탐욕, 성내는 마음으로부터 내 병이 생겼습니다. 모든 중생들이 병에 걸려 있으므로 나도 병들었습니다. 만일 모든 중생들의 병이 나으면, 그때 내 병도 나을 것입니다.”라는 유마거사의 말은 중생과 고통을 함께하는 보살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즉 보살의 병은 보살의 자비에 의한 것이다. 보살은 이 자비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고 있다. 번뇌에 싸인 중생들을 깨달음에로 인도하는 것이 보살이다. 5무간죄, 지옥, 아귀, 축생의 3악도, 탐, 진, 치의 3독에 몸을 던지면서도 이에 속박됨이 없는 것이 보살의 길이다.
  • 셋째 평등의 불이사상(不二思想)의 실천이다. 출가, 재가와 같은 이분법적 구분으로는 궁극적인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 보리와 번뇌가 둘이 아니고,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며, 정토와 예토가 둘이 아니라는 불이(不二)사상을 통해 절대 평등의 경지에 들어가야 깨달음을 성취할 수 있다. 실상의 진리는 형상이 없고, 생각할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는 공의 경지이다. 이러한 궁극적인 깨달음은 언어문자를 초월해 있다.
  • 넷째, 중생들에게 모두 깨달음의 가능성이 있음을 말한다. 유마거사는 현실의 인간이 비록 번뇌를 가지고 악을 행하고 있더라도 궁극적으로는 깨달음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일체의 번뇌가 곧 여래의 종성이다.”라고 하여 불법은 번뇌 가운데 나타난다고 하였다.

승만경

  • 재가자인 승만부인을 주인공으로 한 경전
  • 승만부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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