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0 |
불교천태중앙박물관 도착 |
10:30 ~ 11:00 |
불교천태중앙박물관 소장 유물 관람 |
11:00 ~ 12:00 |
온달산성-군간교-장발리 선돌 |
12:00 ~ 13:00 |
중식 |
13:00 ~ 13:30 |
향산사지 삼층석탑 |
13:30 ~ 14:40 |
단양 적성 |
14:40 ~ 15:40 |
수양개 선사유물전시관 |
15:40 ~ 16:30 |
상시 바위그늘 유적 |
16:30 ~ 17:30 |
도담삼봉 : 기념촬영 (해산) |
온달산성 : 온달산성은 고구려 평원왕(559~590)의 사위 온달이 신라군의 침입 때 싸우다가 전사하였다는 전설이 있는 옛 석성(石城)이다. 성의 둘레 683m의 소규모 산성으로 언제 쌓아졌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조선 전기에 이미 성산성이란 이름으로 있었던 기록이 있으며 현재는 사적 264호로 지정되었다. 성 안에는 삼국시대의 유물이 출토되며, 우물터가 남아있고, 성벽 바깥부분에는 사다리꼴 모양의 배수구가 있다. 남서쪽 문터의 형식과 동문의 돌출부는 우리나라 고대 성곽에서 드물게 보이는 양식으로 주목할 만하다. 근처에는 소백산 아래에 온달 장군이 수양을 했다는 전설을 지닌 온달동굴과 온달이 심심풀이로 공기를 하였다 하는 공기모양의 공기돌이 있다. 또한 성의 북동쪽 남한강의 강변 절벽 아래에는 온달굴이라는 석회암 동굴이 있고, 성을 바라보는 북쪽 강 건너의 산에도 온달과 관계되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향산리 삼층석탑 : 단양읍에서 동쪽으로 16㎞ 떨어진 산골짜기의 밭 한가운데에 서 있는 탑이다. 주변에 자기조각들과 기와가 널려 있어서 이 곳이 절터였음을 알려주고 있으나, 절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1935년경 탑 속의 사리를 도둑맞으면서 허물어졌던 탑을 마을 주민들이 다시 세웠다고 한다. 석탑의 형태가 우수하고 비례도 충실하며, 조각수법에서도 통일신라시대 석탑의 양식을 따르고 있다. 단정한 탑의 조형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통일신라 후기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수양개 선사유물전시관: 대표적인 선사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을 전시한 곳이다. 수양개는 수양버들이 많은 개울을 뜻하는 말이다. 1983년 충주댐 수몰지역 문화유적 발굴조사의 일환으로 충북대학교 박물관과 (재)한국선사문화연구원이 현재까지 10차에 걸쳐 3개 지구를 발굴 조사하였다. 이곳의 지형은 남한강가 충적대지에 자리하여 주위환경이 선사시대 사람들이 살기에 적당한 곳으로, 발견된 석기들은 다양하며 당시 만들었던 기술도 특징을 보이고 있다. 특히 후기구석기시대에서 볼 수 있는 돌날몸돌과 자루를 끼울 수 있도록 슴베가 달린 찌르개는 중국 화북지방, 시베리아 남부지방, 일본 열도 후기구석기시대 유적에서 나온 석기들과 비교할 수 있는 연구 자료가 된다.
단양적성비: 단양적성비는 신라 진흥왕시기 고구려 영토였던 적성지역(현재 단양)을 점령한 후 세운 비석으로 국보198호로 지정되어 있다. 1978년 1월 단국대학교박물관 조사단에 의해 발견되었다. 현재 비석은 그 건립연대를 단정할 만한 직접적인 근거가 나타나지 않아 추정할 수 밖에 없는 상태이다. 이에 내용 분석을 바탕으로 기존의 문헌기록과 대비하여 비의 건립연대는 545년 에서서 550년 사이로 추정하고 있다. 비문의 대체적인 내용은 진흥왕이 이사부 등 10인의 고관에게 하교하여 신라의 영토 확장을 도와 충성을 다한 적성출신의 야이차(也爾次)의 공훈을 표창하고, 야이차와 같이 충성을 바치는 사람에게는 똑같은 포상을 내리겠다는 국가정책의 포고로 볼 수 있다.
도담삼봉 : 도담삼봉은 조선의 개국공신인 정도전(鄭道傳)이 호를 삼봉이라고 한 것이 도담삼봉에서 따온 것이라고 하여 널리 알려졌다. 강물 가운데 우뚝 선 기암괴석이 모두 남쪽으로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는데, 가운데 봉우리가 가장 높은 장군봉(남편봉), 왼쪽에는 교태를 머금은 첩봉(딸봉)과 오른쪽은 얌전하게 돌아앉은 처봉(아들봉)등 세 봉우리가 물 위에 솟아 있다. 이와 관련된 이야기로, 아들을 얻기 위해 첩을 둔 남편을 미워하여 돌아앉은 본처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한다. 장군봉에는 ‘삼도정‘이라는 육각정자가 있는데, 1766년 가을에 단양군수로 있던 조정세(趙靖世)가 능영정(凌瀛亭)을 창건하였다가 헐고, 1807년 김도성(金道成)이 목조로 사각형의 정자를 건립하였으나 1972년 대홍수로 인하여 역시 유실되었다. 이후 1976년 10월 성신양회를 경영하던 김상수가 현재의 육각형 정자를 신축하여 삼도정이라고 명명하고 단양군에 기증하여 현재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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